개요
울산을 여행하면 보통 바다와 산업 도시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지만, 내륙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전혀 다른 울산을 만날 수 있다. 울주군 가지산 자락에 자리한 석남사(石南寺)는 천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고찰로, 신라 문성왕 때 창건된 사찰이다. 도심과는 달리 산속 깊이 숨어 있어,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고요함과 차분함이 공간 전체를 감쌌다. 이번 여행은 바쁜 일상 속에서 벗어나, 산사에서의 하루를 통해 마음을 내려놓는 소중한 시간을 경험하는 여정이었다.
1. 가지산 자락에 닿다 – 숲길로 향하는 발걸음
석남사로 가는 길은 이미 여행의 시작이었다. 울산 시내에서 차를 타고 한참 달리다 보면, 어느새 도심의 건물들은 사라지고 짙은 산세가 눈앞을 가득 채운다. 가지산은 예로부터 ‘영남 알프스’라 불릴 만큼 웅장하고 아름다운 산군을 이루는데, 그 자락에 안겨 있는 석남사는 자연과 사찰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주차장에서부터 경내까지 이어진 숲길은 소나무와 단풍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솔향기가 은은하게 풍겼고,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비쳐 산책로 위에 반짝이는 그림자를 만들었다. 도심에서 들려오는 소음 대신 바람과 새소리만 들려오니, 그 자체가 힐링이었다. 걸음을 옮길수록 마음이 점점 차분해지고, 몸도 가벼워지는 듯했다.
2. 경내 풍경 – 천년의 숨결을 만나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에 들어서자 먼저 눈에 띈 것은 석남사의 대웅전이었다. 단정하면서도 기품 있는 건물은 오랜 세월 속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켜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대웅전 앞마당에 서면 사찰 전체가 가지산의 품 안에 포근히 안겨 있는 듯 보였다.
특히 석남사에는 보물 제369호로 지정된 석남사 승탑과 부도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석조물들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이 돌탑 앞에 서면, 수많은 세대를 거쳐 이곳을 지켜온 승려들의 발자취가 떠오르는 듯했다.
경내 한쪽에는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이 자리하고 있었다. 물소리를 배경으로 바라본 사찰 풍경은 그림처럼 평온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풍경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지며, 이곳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수행과 기도의 공간임을 일깨워 주었다.
3. 산사에서의 여유 – 마음을 내려놓는 시간
석남사는 단순히 ‘보는 곳’이 아니라 ‘머무는 곳’이었다. 경내 곳곳에는 벤치와 쉼터가 마련되어 있어 잠시 앉아 사찰 풍경을 감상하기에 좋았다. 나 역시 대웅전 앞마당에 앉아 눈을 감았다. 바람, 물소리, 풍경소리,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목탁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복잡했던 생각들이 차츰 정리되는 듯했다.
사찰 안에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었다. 간단한 차담을 나누고, 스님들의 일상에 참여하며, 산사의 고요함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다음에는 꼭 하루쯤 머물며 산사의 시간을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내를 둘러보고 나오면서 작은 전각 앞에서 만난 한 스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았다. “산은 늘 그 자리에 있고, 사찰도 늘 이곳에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바뀌고 있을 뿐이죠.” 그 말은 여행이 끝난 뒤에도 오래 마음에 울림을 남겼다.
결론 – 고요 속에서 찾은 울산의 또 다른 얼굴
울산 석남사 여행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자연과 역사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치유의 시간이었다. 가지산의 품에 안겨 걷는 숲길, 천년의 숨결을 간직한 경내 풍경, 그리고 산사에서의 고요한 여유는 모두 잊히지 않을 소중한 기억이 되었다.
우리는 흔히 울산을 ‘산업 도시’라고만 생각하지만, 석남사 같은 천년 고찰은 그 이면의 깊은 뿌리를 보여준다. 이곳에서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훨씬 가벼워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게 된다.
언젠가 다시 석남사를 찾는다면, 이번에는 템플스테이를 통해 산사의 하루를 온전히 경험해 보고 싶다. 천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흐르는 그 공간 속에서, 나 역시 한 조각의 고요를 마음 깊이 새기고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